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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dition green

어디선가 구해 놨던 건데 우연히 하드에 있길래 올려봄ㅎ

by 벽에다화풀이 | 2009/06/30 15:55 | 취미생활 | 트랙백 | 덧글(0)

나와 천주교

인간에 대한 예의, 신에 대한 예의라는 정태형의 글을 보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명동 성당이 일종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유일한 보루 혹은 성지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즈음의 일들에 대해서 화를 내고 분노하고 있다.
'명동성당 너마저'인거다.
그 기분은 이해하지만..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성지이기 이전에
영국의 세인트폴 프랑스의 사크레쾨르(노틀담이 적절하려나..) 그리고 바티칸의 베드로성당에 해당한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뭐 변하는 건 없지만..)
그것이 표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다르다는 말이다. 미안하지만 말이다.

어쩄건 요즘 이글루스에서는 전현직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고백(혹은 생활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말을 잠깐 보태보고자 한다.

.....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사람 노릇을 하기 전에 빅토리노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유치원 시절의 기억 대부분에는 농성동 성당의 등나무 의자가 남아 있고
어느 때인가부터 우리 집에는 성모상과 아버지를 위한 기도가 붙어 있었다.
책장에는 내가 한문을 읽을 수 있기 전부터 억만인의 신앙이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때로는 칩과 테일 등과 같은 디즈니 명작극장을 보기 위해 종이 울려도 성당으로 향하지 않았지만
빼뺴로가 좋아서 칸쵸가 좋아서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았다.

이사와서는 마침 우리 본당이 주교좌성당이었고, 좀 오래되어 놔서(위의 사진이 본당이다 옆 쪽으로는 교육관이랑 사제관이 있었는데 오랜 공사로 커졌다. 지하에도 여러 개 방이 있다) 국민학교 시절의 친구들 중 반쯤은 성당 친구들이었다.
(고1 때 서울로 가셔서 새로 주교님이 오셨다. 어릴 때 계시던 주교님은 지금은 추기경이 되셨다. 나는 어릴 때도 '우리 주교 니콜라오와..'였는데 지금 서울에 와서도 여전히 우리 주교님은 니콜라오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 추기경은 딱 두 분이다.)

요즘들어 보여지고 있는 가톨릭의 이른바 변절에 대한 개인적인 변명 같지만
좀 커서는 성당에서 주보에 껴 있는 유인물에서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글을 읽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한 신부님이지 싶다. 아직 그 때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청소년 성가집 뒷부분에 드문드문 끼어 있는 민중가요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었다.

어쨌건 예전이나 지금의 나에게는
울고 싶거나 힘들거나 답답하거나 여자친구랑 싸우거나 잘못하거나 하면 먼저 생각나는 곳이 성당이다.
얼마 간의 기간 동안 냉담을 했거나 말거나 언제든지 고해를 드리고 성체를 모시고 신부님이나 수녀님과 이야기를 하고.
미사 드릴 때 그동안 잘못했다고 빌고(매번 빈다).

아빠는 성당에 나가서 사람들과 만나고 미사 보고 기도하며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봉사활동을 하시고(하지만 가끔 테니스가 중요할 때도 있으시다고 한다)
수녀가 되고 싶어 했다는 엄마는 요즘 잘 나가시지 않지만 그래도 아빠가 성지순례 가자고 하면 같이 가시고
마찬가지로 잘 안나가는 누나는 아빠가 '이번 주일은 아빠랑 같은 본명을 쓰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주일이야'라고 하면 마지못해 따라간다.

뭐 그렇다.
이렇듯 우리들(이런 표현을 써서 다른 사람들을 타자화시킨다고 하면 뭐 할 말 없지만)에게는 가톨릭은 생활이다.
그리고 성당은 미사와 기도의 장소이고, 때로는 상담소이고 마을 회관이다.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침범할 수 없는 장소..이런 게 아니라
우선적으로 그곳은 신자들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


사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21세기 들어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님들에 대한 인사 문제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한국 가톨릭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더욱 유감스러운 일은 '21세기 들어서'라는 표현은 한국 가톨릭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교구장으로 정진석 추기경님-당시는 대주교-이 자리 하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물론 다들 알겠지만 김수환 추기경님도 정치적 포지션은 보수주의자시다. 내가 이렇게 단정짓는 것이 좀 무리수인 거 같긴 하지만..)

이 문제가 '믿을 만한 우리 편'을 잃어버렸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라면 단지 미안하다고 밖에 할 말은 없지만
이 문제는 종교의 문제이다. 헌법적으로 말하면,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의 실현과 침해의 문제이다.
이렇게 선을 그어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내가 가톨릭 신자여서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이런 다소간의 입장 차이가 있더라도
나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며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내가 믿는 가톨릭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명동성당이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해서 미안하다.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입맛이 쓰다.

by 벽에다화풀이 | 2009/02/16 11:30 | 트랙백 | 덧글(3)

이기적인 것은 감정적인 것이다.

이기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이성적인 것은 사회적인 선의 총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이런 목적론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단지 선을 지향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

자기에게 이로운 것은 자기에게 좋은 것이고, 자기에게 좋은 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싫지 않고 좋은' 것으로 감정적인 것이다.

by 벽에다화풀이 | 2009/01/06 21:48 | 트랙백 | 덧글(0)

카니발 콘서트를 다녀와서.

카메라를 누나가 신혼여행에 쓴다고 가져가기도 했고
애초에 플래시 팡팡 터지면 공연에 방해될 까봐 간단히 핸드폰으로 딱 한 장 찍었다;
(기자들은 무대 바로 앞까지 나가서 맘대로 찍긴 했는데 매너인지 매너가 아닌지 확실히 모르겠다. 촬영 허가를 받긴 했을 텐데.)

                                                         아마 이 사진은 그 땐 그랬지가 끝나고 나서 일거다.

R석을 예매한 줄 알았으나 S석이었다. 그래도 대 만족이었다.

노래는 총 25곡 정도.
중간의 크리스마스 캐롤 같은 영어 노래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는 노래라는 점이 참.
조용한 곡을 빼고는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ㅋ
막 뛰고.

김동률 씨가 '히트곡을 콕콕 불러줘야 한다고 하길래'
'뭐야 그럼 취중진담이라도 하겠다는거야?'라고 친구랑 얘기했는데 바로 취중진담이 나오더라.

음 팬층이 겹치니까 여기에 이승환+토이까지 했으면 대형콘서트였겠다 싶다. 하하 (2~30대를 위한 드림콘서트네)

서동욱이 나왔을 땐 '뭐야 이거 진짜야?'싶었다. 다소 어색하지만 익숙한 미성.
첫사랑까지 불렀으면 좋았으련만.
김진표야 뭐 이적씨 말대로 티비엔 연예뉴스에서 자주 보니..ㅋ

김동률의 '다행이다'는 디지털 싱글로 내도 좋을 것 같은데ㅋ
이적의 '아이처럼'은 뭔가 무서웠다; 하하.

아무튼 그 때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특히 카니발을 함께 좋아했고 97년 겨울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 함께한 공연이라서 더욱 좋았다.

by 벽에다화풀이 | 2008/12/15 12:09 | 트랙백 | 덧글(0)

그 선생님을 추억하며

내가 나온 학교는 사립학교여서, 연공서열과 약간 상관없는 형태로 교원인사가 이루어지곤 하는 곳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꽤나 정상적인 상황인데 사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 선생님은 나이는 고참급이었는데, 학교 내에서의 서열(?)은 열외였다.
(사립학교를 나왔으면 어떤 말인지 이해하리라..)

그래서 학생들이 다소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고참이라 담임 맡은 반도 없지만, 수업 부담이 이상하게 과중했던 그 선생님.

짜증날 정도로 유인물을 배부해 주시던 그 선생님.

고등학교 2학년 겨울로 기억된다.

선생님이 또 한아름 유인물을 가져오셔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당시 나는 우수반에 속해 있었기에 그런 자료는 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언어영역 문제집을 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거만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으..-말버릇이시다-여러분이..으.. 대학에 가고 그러면 이런 글을 자주 볼텐데..으.. 참 좋은 글이다..으..'

당시에도 '일말의 정의감'만 있었던 나는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언급한 그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 글의 제목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였다.

쓸데없이 긴 글과 어려운 수열들과 필요없는 통합사회문제와 과도한 영어독해에 치여있던 시절이 아니었다면 참 재미있게 읽었을 텐데, 언어영역 지문으로 출제되곤 했던 '비문학지문 중 논설문'이 아닐까 하고 내용과는 세세하게 읽었었다.

지금 생각하기엔 어떠한 이념적 지향을 설정하려고 하셨다기 보다는 그저 자연의 섭리를 설명하고자 하셨던 것 같다.
당연한 것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고. 그저 조리(Natur der Sache-간만에 쓰는 독일어)를 상기시키셨을 뿐이다.

한겨레 신문이 무엇인지, 제시 젝슨이 누군지 알게 된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회에 나온 지금에 와서도 그 선생님이 가끔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참으로 추울 것 같은 2008년 12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도 참으로 용기있는 선생님이셨다.

존경합니다. 박 선생님.

by 벽에다화풀이 | 2008/12/15 11:1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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